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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tion & Remediation


매개: 어떤 매개가 되는 무엇이다.

비매개: 매개를 느끼지 못하게 하고싶다. 매개하지 않는다. (매개물이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느끼게 하는 욕망으르 지녔다.)

재매개: 기존의 매개를  다시 매개하는 것 (ex 마이크를 사용-> 목소리 확대 =>기존의 매개를 재매개)

하이퍼매개 : 매개가 된 재매개들이 모여,융합하여 경험하는 것 ( 다양한 요소의 결합) 예로 컴퓨터는 각각의 재매개 기능들이 모여 있다.

 

"모든 매개는 이미 재매개이다"

 

"모든 매개의 목적은 비매개성에 있다"

창문이 창문으로서 느껴지지 않을만큼 깨끗하고 투명한 것이 목적이다. 이는 매개의 비매개성을 보여준다.

 

하이데거는 " 모든 기술적인 것의 목적은 기술적이지 않은 것에 있다:고 하였다. 기술은 단지 수단,목적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펜이 잘나온다면 펜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펜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펜을 인식한다. 이것이 매개성->비매개성->매개성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재매개성의 이중논리

 

매개가 좀 더 나아지려는 욕망과 비매개 하려는 욕망이 충돌하는 것이다.

 

 

●Semiotics & Semiologic 

 

소쉬르와 퍼스에 대해 알아보자..

 

기호론은 미디어를 어떻게 볼것인가 하는 관점이다.

 

일단 기호는 서로 나눌 수 없는 두개의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시니피앙(Signifiant) 기표 : 언어에서 일단의 말소리나 책에 쓰인 기호

시니피에(Signifie) 기의 : 그 기호와 의미인 개념 또는 관념

 

언어 기호를 소쉬르는 '자의적'이고 '임의적'이라 하였다.

즉, 의성어라는 예외가 있지만, 언어적 시니피앙과 그것을 의미하는 것 사이에는 내재적인 관계나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한 언어의 모든 요소의 개별성은 객관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들 즉 어떠한 특정 언어 체계 안에서만 작용하는 다른 소리들, 다른 단어들 그리고 다른 시니피에들과의 구별과 대립으로 구성되는 관계의 조직망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다.

 

언어학 또는 어떤 기혹이라도 그 목표는 파롤을 랑그의 한예로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파롤은 하나의 언어행위 또는 하나의 기호나 일단의 기호들의 특별한 사용 즉, 사투리라고 생각하면 쉽다. 

랑그는 기호들이 특별하게 사용되는 그 저변에 깔린 묵시적 차이들과 결합 법칙들 쉽게 표준어라고 생각하면 쉽다.

->기호학적 관심의 ㅣ초점은 랑그의 잠재적 언어 체계에 있는것이지 파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과라는 단어를 보자

사과라는 단어의 기표와 그 기표에 지칭할 수 있는 과일(기의) 이렇게 존재한다.

Object는 기의 이름은 기표 이다. 기표는 문화권에 의해 달라질 수 있지만 기의는 같다.

 

한 언어의 모든 요소는  차이에 의해 구별한다.

 

  

 

이 그림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파이프가 아닌 파이프 그림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표와 기의가 매칭되지 않을 수 있다.

기표와 기의는 논리적 구조에 의해서 연결된 것이 아니다.

기호  기표와 기의가 분리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구서원들이 자의적이고 문화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분리가 가능하다.

그림만 홀로 존재할 때와 글씨가 있을때 기의가 다르다. 

 

 

기호의 수평적 관계는 차이에 의해 만들어 진다.

즉 차이에 의해 기표와 기의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 낸다.

 

기호의 의미는 기표와 기의의 수직적관계에 의해 결정되지만 다른 기호들과의 수평적가치에 의해 기호의 가치가 결정된다. 

결국 기호들간의 상호 작용에 희애 관계를 만들어 낸다.

 

기표의 의미화 - 기호가 가진 기표와 기의에 의해 결정

기호의 가치화 - 체계내의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의 의해 결정

 

 

 

퍼스

ICON(도상) - SYMBOL(상징) - INDEX(지표) 

 

ICON 도상

내재적인 유사성 또는 고옹된 특징에 의하여 기호 구실을 한다. 대상과 이미지 간의 닮은 구상을 전제로 한다.

 

SYMBOL 상징

상징은 사회적 약속에 의해서 규정된다. 

 

INDEX 지표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는 기호이다. 예를 들어 사막에 발자국을 보면 누군가 걸어왔다는 것을 예상 할 수 있다.

 

쉽게 화장실 그림을 보자

이미지 속 여성과 남성은 도상적 이미지로서 아이콘이며 색과 화장실을 상징하는 약속을 지녔기에 심볼이다.

 

 

형태소, 해석소, 대상

 

형태소: 기호가 취하는 형태

해석소: 해석자가 아닌 기호의 의해 만들어진 관념

대상   : 기호가 지시하는 것

 

퍼스와 소쉬르를 비교하자면 형태소는 기표 해석소는 기의 개념과 유사하다.

 

기호는 형태소를 외형으로 하여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렇게 마음속에 생겨난 기호를 본래의 기호에 대한 해석소라 부른다.

형태소는 이것이 지시하는 대상을 표현한다. 해석소는 기호를 보고 해석자의 마음속에 생겨난 또 하나의 기호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무라고 마릉ㄹ 했고 그 언어 자체 또는 음성은 형태소라고 볼 수 있다. 그 말을 듣고 내 마음 속에 떠오른 나무라는 이미지는 해석소 라고 볼 수 있다.

대상은 실제 나에게 나무 라고 말한 사람이 기리키는 실제의 대상이다.

 

이렇듯 해석소와 기의가 다른 점은 해석소는 해석자의 마음 속에 생겨난 또 하나의 기호라는 점이다.

 

 

 


소싀르와 구조주의

 

1.소쉬르와 구조주의

구조주의에서 구조(structure)는 관계와 차이의 체계, 즉 공시적 특성을 지닌다.

언어의 개별적 사용 즉, '파롤'보다는 언어의 일반적인 구조인 ' 랑그'에 초점을 둔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으로 부터 유래 되었다.

 

소쉬르의 구조주의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만들어진 구조 안에서의 개념이다.

그말은 내가 생각하는 개념 자체가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구조, 통념 속에 있는 것들 모든 것들이 우리의 약속을 벗어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는 관계와 차이의 체계이며, 다른 전체의 서로 차이점, 다른 구성체에 의해 구조물이 만들어진다.

 

2.구조와 주체

'구조'는 자율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인간의 자율성을 주장하였지만 구조주의는 자율적이고 능동적 주체의 개념을 거부한다. 

데카르트가 존재의 조건으로 내세운 '생각'이란 개인 고유의 판단이 아니라 언어라는 사회적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사회구조 없이는 말도, 생각도 불가능 하다면, '나'란 언어가 심어준 환상은 주체가 사회주의로 환원되는 상황에서는 개인도 자율성도 저항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구조주의는 다분히 결정론, 숙명론적 성격을 갖는다.

 

구조주의가 이미 우리 사회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결정되어 있어 새로울 것이 없다 라는 결정론적인 입장이 있기에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후기구조주의가 생겨났다.

 

 

3.자의성, 부정성, 관계, 차이

 

자의성 : 기표와 기의 사이에 닮은 점이 없다.

부정성 : A가 A인 이유는 A가 아닌것에 있다. 차이와 부정을 통해 구별

 

차이에 의해 규정하였고 부정으로부터 정의 하였다.

 

 

몰랑바르트

 

소쉬르의 기호학에서 발원 하였다

"시니피앙(기표) + 시니피에(기의) = 기호"를 따른다.

소쉬르의 기호학은 사회적 실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화적 기호들의 의미작용까지 놓치지 않았는데, 바르트가 소쉬르 기호학을 현대 기호학의 원리 및 역동성으로

인식한 이유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르트는 현대 사회와 문화 속에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새로운 기호 작용. 즉, 신화학[Mythology] 으로 말해지는 현대성이 부여한 기호 탐구에 매진 하였다.

소쉬르의 기호론[기표형식]+ 기의[사회 문화적 개념] = 바르트의 신화학

바르트의 신화학은 기호와 연쇄로부터 나타난다.

 

바르트의 의미작용의 3단계 시니피앙,시니피에 그리고 지시대상은 큰틀에서 일반기호학이다.

 

데노타시옹[외연]과 코노타시옹[함축/내포]은 예름슬데우의 외시 기호학과 공시기호학의 개념에서 발원하였다.

 

외연은 기호이 1차적 의미작용으로 문화의 차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의미를 산출하는 과정을 말한다.

반면에 내포는 기호가 사용자가 속한 문화적 차이와 개인의 정서에 따라 다른 의미를 산출하는 2차적 의미작용의 과정이다.

 

바르트의 신화학개념은 자연화되고 상식화된 지배적 담론 체계를 상징한다. 

텍스트의 의미가 외연에서 내포와 신화로 바뀌어 가는 과정은 텍스트에 내재된 의막 사회저긍로 상투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바르트는 그 이후 70년대에 이미지 현상학에 몰두 하였다.

사진의 외시 의미와 함축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현대 사화와 문화의 맥락속에서 무의미 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로서 스투디움(Studium) 푼크툼 개념이 생겨났다.

스투디움이란 사진이 담고 있는 전체적인 범주, 작가의 촬영의도인 문화, 관습, 총체적 정보들을 가진 보편적인 문화적 기호로서 작용하는 사회적으로 공유된 코드로서 

지극히 넓은 영역이다.

대표적인 예로 잘찍은 보도 사진이나 자미 감탄이나 흥미를 주지만 마음 깊은속에 내재되지 못하는 것들이다.

 

푼크툼은 내포, 아주 개인적인 상처 등에 의해 사진을 읽는 것이다.

사진의 아주 작은 요소가 타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자기의 마음을 찔러 오랫동안 내밀하고 사적인 과정을 거쳐 그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 이다.

이는 코드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 우연성이다.

 

 

 

자크 데리다

 

자크 데리다는 해체 주의 후기구조주의자로서  차연= 차이+ 지연 이라 하였다.

 

텍스트의 의미는 궁극저긍로 결정되어 있거나 확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작용의 연쇄 속에서 하나의 대체 가능한 언어해석으로부터 

다른 해석으로 지연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어들간의 차이에 따라 정의디고 그러한 정의는 의미의 가능성에 한계를 지니개 하낟.

우리가 영영사전에서 어떤 단어를 찾는데 그 단어를 찾으면 그 단어의 해석을 위해 모르는 단어를 또 찾게 되고 이렇게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Virtual & Argumented Reality

 

가상현실과 가상성

 

 Virtual Reality : 컴퓨터 혹은 디지털 메체를 이용하여 어떤 상황을 실제인 것처럼 체럼할 수 있는 가상,사이버 공간

 

디지털 매체에 있어서 가상현실을 주목하는 이유는 가상현실이 디지털메체가 만들어 낸 가장 극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하임은 효력면에서는 실제적이지만 사실상 그렇지않은 사건이나 사물을 통해 가상현실이 내포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시사하였다

가상과 현실은 모순된 개념이다. 가상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허구적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현실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함축 하고 있다.

이는 가상현실은 그 자체로서 현실이 아니라 현실처럼 보이는 가상이지만 구조적으로 보자면 가상적이긴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는 그자체로는 가상이지만 구조적으로 현실이라는 말이다.

 

질 들뢰즈는 "가상현실은 가상으로서의 훌륭한 현실을 담고 있다"라고 하였다.

 

 

 

하르트만

 

매체가 갖는 역할을 주목하자, 현실 세계와 매체에 의해 충출된 인위적 세계의 구현은 무의미 하다.

이 말은 우리가 현상하는 세계는 곧 매체의 이해 구성된 가상적인 세계 일 수 있다. 라는 것

현실적 가상이라는 개념 실재혹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허구이며, 현실적 가상이란 있는 그대로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세계자체도 ㅣ미 하나의 허구적인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과 가상을 나눠서 구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현실도 인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볼프강 벨쉬

 

세계는 어떤 단일한 기준에 의해서 해석 될 수 없다.

'현실 자체'라는 개념 역시 이미 인위적인 세계로의 변화됨을 지적

->원천적으로 어떤 세계도 인위적이지 않은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성, 인위성의 범주를 별도로 조재하는 두개의 세계로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연적 세계와 인위적인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세계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벨쉬는 이 둘의 구분을 완전히 포기 하지 않았다.

자안성과 인위성을 실재적 실재와 가상적 실재로 대체 하였다.

우리가 실재적 실재라고 믿는 현실세계는 가상현실의 지배가 전면화되는 것에 대한 일정한 반작요오가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연을 체험하기 위해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느끼러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 자체가 자연적이지 않은 인위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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